근무 중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례행사를 주관하는 장례지도사의 전화였습니다.
“상담사님, 괜찮으시다면 장례행사 중인 상가 방문을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다행히도 일정이 없기는 한데, 무슨 일로 이리도 급히 찾으시는건가요?”
“고인이 젊은 여성분이에요. 그리고 자살을 하셨구요. 그런데 고인의 어머님이 너무 많이 슬픔을 표현하고 계시는 듯 보여 도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하튼, 시간이 되신다면 꼭 좀 오셔서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짧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업무를 정리한 뒤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구석진 가장 작은 빈소였지만, 연신 들리던 고성으로 빈소를 쉬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시듯, 딸의 영정이 놓인 빈소에서 연신 담배와 소주를 번갈아 피고 마셨습니다. 절규하듯 뱉어내는 울음소리는 이제 목이 쉬어 갈라질 데로 갈라져 버렸고, 그 옆에는 대치되듯 젊은 여성이 무표정의 얼굴로 차분히 앉아 있었습니다.
“OO 대신 니가 죽었어야 했는데, 니가...”라는 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에도, 어떠한 대꾸도 반응도 없던 그녀는 고인의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애비 닮아, 나는 니가 싫다.”, “너는 아빠를 앞세우더니, 니 언니까지 앞세우고도 울지도 않냐. 이런 독한년”이라는 어머님의 악다구니에도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녀
또 어디론가 전화를 합니다. “우리 OO가(고인 존함) 목을 메서 죽었어...”, “이제 어쩌면 좋으냐...”라고 절규하듯 뱉어내는 어머님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머님 보다 그녀(동생)의 안위가 더욱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입관...
장례행사 기간 동안 감정의 역동이 제일 큰 일련의 시간들입니다.
사별로 인한 상실을 경험할 때, 우리가 겪어나갈 상실의 과업 중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부분이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 과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염습과 입관식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은 슬픔의 고통을 배가 시키기는 하지만, 상실의 직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가족들의 혹시 모를 불상사나 감정의 역동들을 나누기 위해 함께 참관하였습니다.
입관대에 누워있던 고인은 과연 돌아가신 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지금까지도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고운 피부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잠자듯 누워 계셨습니다.
입관식이 시작되고, 연거푸 고인에게 달려가시던 어머니는 급기야 또 소리를 내지르셨습니다.
“OO 대신 니가 죽었어야 된다고...”
아직 살아있어서 뭐하냐는 어머니의 비수 꽂힌 말씀이 입관실을 꽉 채웠고, 그 소리에 저 역시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더해 왔습니다.
강한 울음과 침착함을 넘어선 침묵을 뒤로, 입관식은 끝이 났습니다.
격한 감정을 뱉어낸 감정의 소진과 과한 술기운으로 입관식이 끝난 이후 어머님은 기절하시듯 주무셨고, 그녀와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니요. 정말 죽지 못해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어요. 언니 장례 마치면 정말 죽고 싶어요”라고 바로 답변하던 그녀. 그렇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질게 생을 떠났던, 고인은 잘 나가는 대기업 디자이너였었다고 합니다. 어려움 없었던 유년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세상 물정 모르던 어머니는 순식간에 어린 자매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고, 여타의 일들보다 수입이 좀 더 많다는 소개로 나이트클럽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사별한 젊은 미망인은, 남편을 쏙 빼닮은 그녀(둘째)와 언니를 차별했습니다. 때때로 “너는 아빠 닮아 밉다.”는 표현들도 스스럼없이 하시며, 오롯이 큰딸에게 많은 부분들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영락없는 부잣집 외동딸처럼 곱게 보이던 고인은, 화이트칼라 직종의 남성과 오랫동안 연애를 하였고, 자연스레 결혼이야기가 오고가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숨기며 만났기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었고, 그렇게 이별을 했습니다. 실연의 아픔, 건강 이상으로 인한 수술과 퇴사가 한꺼번에 겹치며 비관하는 마음들을 감당치 못했던 언니는 몇 날 며칠을 술로 지내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반면, 언니의 그늘에 가려진 그녀는 결핍을 느끼면서도 꾸준히 직장생활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에 대한 계획들을 세웠었다고 합니다. 언니보다 먼저 결혼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반대, 언니의 실연 등으로 남자친구와 싸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현재는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언니에게 정말 화가 많이 나요. 언니는 정말 이쁘고, 공부도 잘했고... 남들에겐 공주 그 자체였어요. 친구들은 완벽한 언니가 있어 부럽다는 말도 했었지만. 저는 항상 언니한테 가려져서 비교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라 힘이 들었어요. 엄마 사랑도, 좋은 옷도, 방도 다 언니가 가져가 놓고... 이젠 남자친구까지도 헤어질 참인데, 언니는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고, 엄마는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다 급기야 처음으로 터진 눈물에 해 줄 수 있었던 건, 가만히 옆에서 들어주고 토닥이는 일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례를 마친 후 우리는 함께 마주 앉아 어머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언니와의 사별 뒤 찾아오는 애도의 과업들을 나누었습니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그 속에서 상처를 받고 상실의 아픔을 겪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고, 그것이 고의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처를 제대로 살피고, 들여다 봄’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애착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을 사별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특히, 자살로 인한 사별의 상황은, 남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변하게도 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별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남은 가족들은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어렵고 사회적 낙인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느끼는 분노, 죄책감, 두려움, 불안감 등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표현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위로와 지지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혹은 사람이 아니라, 반려동물로부터 위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와의 불완전한 애착관계와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따른 상처들을, 담담하게도 죽음으로 마무리 지으려던 그녀는 상처받은 과거의 자아에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또한 언니를 상실한 그 이후의 애도의 과업들을 찬찬히 함께 풀어보며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뒤늦었지만 주변에 조심스레 알리기도 했고, 그녀에게 비난을 퍼붓던 어머니에게도 감정들을 나누어 보면서 말이지요.
무엇보다 소원했었던 연인과 그간의 오해와 묵은 감정을 풀고, 애도의 과업들을 함께 동참하며 나아갔습니다. 언니와 어머니에게 가졌던 양가감정에 따른 괴로움으로 어찔할바 몰랐던 건조함은, 진심으로 언니를 추모하며 언니의 빈자리에 따른 새로운 역할분담을 어머님과 조심스레 시작했습니다.
죽음 이후, 남은 우리들의 시간들에 고통과 괴로움은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별은 우리의 탓도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자책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그 감정들은 들여다보고 잘 다독이며 새로운 삶으로의 계획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기를 내어 주었던 그녀의 앞날이, 이처럼 맑은 여름날의 싱그러움처럼 찬란하길 응원합니다.
글 / 류은지 그레이프 치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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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프(Grape)는 동서양 모두에서 오래전 부터 풍요와 다산, 장수를 상징했으며 포도나무는 쉼과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레이프 치유센터는 상실 이후 애도 과업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위로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우리 삶의 QOE(Quality of Ending)를 높이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레이프 치유센터는 슬픔에 처한 분들의 쉼과 평화, 풍요와 건강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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