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어느 봄 날,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나 좋았는지 세 달이라는 짧은 만남에도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결실로 귀여운 딸아이를 낳고 따뜻해질 봄이면 딸아이를 태워 봄꽃 구경가자며 들뜬 기대감으로 유모차도 준비해 놓고 백일 이후의 소소한 행복들을 그렸습니다.
아이의 백일잔치가 되어 행복한 잔치를 치른 후 남편은 어머님을 모셔드리고 오겠다는 말만 남겨놓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교통사고’, ‘남편의 죽음’ 그리고 '현장사망'
험했던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몸 푼 지 백일 남짓의 아내는가족들의 만류로 눈에 꼭꼭 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한 순간에 남편을 앞세운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겨 표현하자면) “남편을 잡아먹은 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귀여운 딸 역시도 백일날에 아빠를 여읜 가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사정을 딱하게 여겼던 이웃이 저에게 상담을 부탁했습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봐 줬으면 좋겠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인의 소개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사연의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반쯤 넋이 나간 슬픈 얼굴의 그녀였습니다.
“안녕하세요.”
“…………………………..”
10분이 지나고, 20분, 30분… 아이의 숨소리로 겨우 정적을 멈추는 방 안… 1시간을 서로 대치하듯 앉아 있었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해결이 안 되시겠지만, 어떠한 마음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말만 남겨놓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그녀를 찾았고 또 다시 반복되었던 침묵들.
연거푸 아이의 칭얼거림과 그 이후의 정적만으로 대치되던 시간들이 반복되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괴롭고, 그렇게 훌쩍 떠난 남편이 너무나 밉고도 그립습니다. 자꾸만 어머님을 모셔드리고 오겠다며 웃었던 남편의 모습이 떠나질 않고,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
“봄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춥습니다. 저에게도 봄이 올까요?”
감히 어떤 말을 그녀에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어떤 말이라도 선뜻 건네 줄 용기가 없었습니다. 힘없이 그 말을 쏟는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저 그 무거운 상실감과 가녀린 그녀가 버텨내야 할 삶의 무게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그렇게 그녀와 울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감정을 토해내듯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엄마의 우는 소리에 칭얼거리며 잠을 청하던 아이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렇게 모든걸 토해내듯 울고서는, 남편의 빈자리를 실감하기 시작했고, 남편의 부재로 인한 고통스러움과 육아의 현실들을 알아 나갔습니다.
그 이후, 그녀는 암묵적인 주변의 편견 역시도 견디며 상실의 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낙심과 남편에 대한 끊이지 않는 애통으로 고통스러움을 호소하였지만, 그 때의 감정들에 솔직함을 표현하며 조금씩 애도의 과업들을 감해 나갔습니다.
사별을 겪은 이후, 새로운 관계들을 맺으며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죽은 이에 대한 풀지 못한 혹은 양가감정 등의 애매한 감정들과 자기 스스로의 모습들을 증오하거나 거부하는 감정들입니다. 이와 같은 감정들이 앞으로의 삶을 나아가는데 있어 해를 끼치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맺을 수 있는 관계에서도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다루는데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솔직했고 많이 아팠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들에 우울해질 때면 도움을 요청했고, 그러한 행동들이 그녀를 상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살아갈 이유를 잃었던 자신의 지난 모습을 떠올리며,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시간들을 알려주고 싶다며 보험업을 시작하겠노라 수줍게 웃었습니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주하고 건승을 빌어주던 그 때를 기억해 봅니다.
다시금 봄이 올 수 있겠냐며 조심스레 물었었던 그녀에게,
다시, 또다시 찾아오게 될 그녀의 봄을,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을 모습을 그려봅니다.
비타노바!
* 비타노바(Vita Nova):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가 불러일으키는 완전히 새로운 삶
PS. 그녀와의 만남을 계기로 애도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사별 상황에서 치유의 대화가 필요하신 분들과 함께 애도의 과업을 함께 해나가고 있습니다.
글 / 류은지 그레이프 치유센터 센터장
웹매거진 [더 그레이프]는 상실과 치유를 주제로 우리 삶에 사랑과 희망, 위로와 안녕을 소망하는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진 웹매거진입니다. 이메일로 정기구독 할 수 있으며 관련 주제의 도서와 영화,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콘텐츠와 인물 인터뷰, 상실치유 워크숍, 웰다잉 프로그램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레이프(Grape)는 동서양 모두에서 오래전 부터 풍요와 다산, 장수를 상징했으며 포도나무는 쉼과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레이프 치유센터는 상실 이후 애도 과업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위로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우리 삶의 QOE(Quality of Ending)를 높이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레이프 치유센터는 슬픔에 처한 분들의 쉼과 평화, 풍요와 건강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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