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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우울증과 함께 그린 그리움



“엄청난 상실 앞에서 마음은 그저 먹먹해질 뿐이다. 상실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그 세세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마음과 기억이 제대로 알려면 몇 달, 어쩌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 마크 트웨인 -



추운 겨울바람이 온 몸을 휭휭 감싸는 이맘때, 그녀를 자조모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흰머리가 소복한 단발머리의 그녀는 “우리 남의 모습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지적하고, 흉 보진 말아요.”라는 당부로 시작하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나는 2년전에 남편을 먼저 보냈어요. 그리고 이렇게 남편 얘기를 하려니 쑥쓰럽네요.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마치 ‘내가 언제 노인성 우울증을 앓고 있냐’고 비웃듯이, 여타의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또렷하게 이어갔습니다.


“나는 남편과 살아가면서, 엄마와 오빠들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친정식구들 생각하면, 나를 이렇게까지 힘든 삶으로 내다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참동안이나 힘들고 외로웠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많은 사랑, 특히 아버님의 편애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세수조차도 혼자 했었던 날이 손에 꼽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감기로 인한 폐렴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 어머님의 준비 안 된 경제력은 결국 있던 재산들을 지키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날 이후로의 삶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오빠들을 제치고 받아왔던 사랑은 구박과 서러움으로 어머님의 일을 도와야 헸고, 누구보다 잘했던 공부는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들에 밀려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와 달리, 안정된 삶이 보장된 ‘건실한 청년’이라는 중매쟁이의 소개로, 3번의 만남에 결혼날짜를 잡았고, 남편이 어떤 성정인지는 알 수 없이 가정을 꾸리셨다고 했습니다.

엉겁결에 시작한 결혼생활,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사랑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때처럼 남편에게 귀이 여김 받으며 현모양처의 모습을 꿈꿨으나 그녀의 결혼생활은 녹록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쉼없이 이어졌던 자책의 시간들…


그녀의 남편은 회사에서 아주 건실하고 성실한 분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퇴근 이후의 가정생활은 항상 회사생활의 연장선이었습니다.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그녀와 아이들은 웃었다가 울었으며, 남편의 작은 움직임조차 움찔거리며 남편의 기분을 살폈다고 합니다.


이따금씩 직장동료들의 처가들과 비교하는 언행들…


‘너까짓께 아는게 뭐가 있느냐.’, ‘가방 끈이 짧은 너랑은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들에 그녀는 무수히도 짓밟혔다고 했습니다. 몇차례 가했졌던 폭력보다도 화살처럼 독하게 날아들던 남편의 폭언으로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정에 대한 원망에 더욱 비참했다고 합니다.


은퇴 이후에도 남편은 남들과는 달리, 여전히 꺽이지 않는 기운으로 이따금씩 그녀를 힘들게 했고, 그럴수록 무기력해졌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했어요.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나였어요. 나만보면 화를 내고, 싫어했어요. 나도 그런 남편이 싫어서, 억지로 가슴에 불을 꺼가며 꾹꾹 참고 살았지.”


“그런데 남편이 죽은거야…”


“남편이 죽고, 나는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아~ 이제 해방이다…’ 했어요.”


그렇게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부재에 따른 홀가분함을 이야기하던 그녀.


그래서 “나는 지금이 딱 괜찮아요.”라던 그녀는, 모임의 회기를 거듭할수록 눈빛과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원망보다는 남편의 강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남편과 함께했던 일상들을 얘기했으며, 얘기 중간중간마다 울음 삼킨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힘든 기색이 보였지만, 한번도 빠지지 않고 모임을 참석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너무 싫어했고, 그런 남편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이렇게 남편 이야기를 하고 다른 분들의 얘기들을 듣고 있으니, 내가 왜 이러나 싶어요.”


“까도 까도 모르겠던 내 마음이 나도 이상해요. 이따금씩 남편의 좋은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서 엉뚱한 생각들이 날 때면 민들레 홀씨처럼 훌훌~ 기억을 날려 버리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자꾸 이야기 하다 보니...”라고 울먹이던 그녀는


“내가 남편을 그리워할 줄 몰랐어요. 너무 무시만 당하고, 서럽기만 해서 남편 생각은 아예 닫고 살았는데... 그래도 남편이 나를 아껴주었던 시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남편을….. 이렇게 그리워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라며 그제서야 울음을 뱉어 내셨습니다.


노인에게 더욱 다가오기 쉬운 우울증은 소중한 가족, 특히 배우자의 죽음을 통한 상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런 상실을 처리하는 능력들은 각자 다르지만 상실한지 1년 이상의 시간동안 남은 배우자의 건강문제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사별 슬픔에 따른 잠재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사별 이후, 애도의 시간을 보내기 보다, 극복하고 흘려버리는 대상으로 여기고 견디셨던 분들에게는 이런 지연된 슬픔으로 추후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별 이후 슬픔의 과정들을 겪어 나가는 일련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슬픔이나 좌절, 분노나 그리움 등의 감정들을 나누거나,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과 함께 만나 대화하고 공감하는 시간들이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상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눈물이 날 때 소리 내서 우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고인의 기념일이나 기일에는 긍정적인 기억들을 떠올리고 주변과 추억을 나누는 것도 슬픔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우울과 관련하여 과거의 경험이 있거나, 사별 이후 홀로 생활하는 경우 혹은 연달아 이어지는 사별이나, 사회적 · 경제적인 고립이 있을 경우에는 전문기관과 상의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한동안의 흐느낌과 정적을 깨고,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었습니다.


“다들 미안해요, 내가 이렇게 울어서...” “남편이 죽고, 마음속에 답답함이 너무 많았는데~ 이렇게 이야기 하고 나니 후련하네요. 아이들이 아빠 때문에 엄마가 힘들었으니, 이제는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아이들과는 남편 애기도 못 꺼내고, 내 주변에는 자존심 때문에 말을 하기 어려웠어요.”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내가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했는지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던 그녀는, 남은 회기의 시간들에서 더욱 열심히 남편의 애도작업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남편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다짐했습니다. 보랏빛 화사한 니트모자에 단정한 외투로 단장하시고선, 남은 시간들을 함께 했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거나 강아지와의 산책으로 보내던 그녀의 일상은, 이제 친구들과 식사약속을 잡고 책을 읽는 시간들을 늘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글을 좀 써보고 싶어요, 내 안에 갇혀 있던 내 마음들을 글로 써서,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어요. 하다가 보면 저도 잘 할 수 있겠지요?"라고 수줍게 웃었던 그녀의 모습에 저도 함께 웃음으로 화답해 드렸습니다.


긴긴 외로움과 자책으로 감싸고 있던 그녀의 우울은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려버리고, 그녀의 남은 버킷리스트들이 자유롭게 뿌리내리고 생명을 움튀울 수 있길 뜨겁게 응원합니다.


글 / 류은지 그레이프 치유센터 센터장



 

웹매거진 [더 그레이프]는 상실과 치유를 주제로 우리 삶에 사랑과 희망, 위로와 안녕을 소망하는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진 웹매거진입니다. 이메일로 정기구독 할 수 있으며 관련 주제의 도서와 영화,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콘텐츠와 인물 인터뷰, 상실치유 워크숍, 웰다잉 프로그램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레이프(Grape)는 동서양 모두에서 오래전 부터 풍요와 다산, 장수를 상징했으며 포도나무는 쉼과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레이프 치유센터는 상실 이후 애도 과업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위로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우리 삶의 QOE(Quality of Ending)를 높이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레이프 치유센터는 슬픔에 처한 분들의 쉼과 평화, 풍요와 건강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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