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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아내의 부재로 인한 인생좌표 상실, 그리고...





“저기, 저희 아버님을 부탁드리고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젊은 남성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님과의 갑작스런 사별을 맞이하신 후, 지금은 도가 지나치리만큼 은둔하고 계셔서 걱정스럽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드님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오곡이 무르익는 계절에 맞이한 명절날,

모처럼 부모 앞에 마주앉은 세 아들들에게 맛난 음식을 해주시겠다며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셨던 어머님.

일순간 ‘쾅-’하는 둔탁한 소리에 달려가 보니, 어머님께서는 거짓말처럼 쓰러져 계셨고, 미쳐 손도 써보지 못한 채, 명절날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님의 장례식, 그 이후부터 아버님의 말수는 평소보다 더하게 줄었습니다. 줄곧 하시는 표현이라곤 ‘내가 재수가 없어서...’ 라는 말씀을 하시며, 6개월이 넘는 시간들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간들을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컴컴한 방속에서 우두커니 계시는 아버지의 일상을 들여다보던 자식들이 보다 못해 센터를 찾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버님의 힘든 모습을 보시면서, 자녀분들께서도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어머님의 부재에 이어 아버님까지 잘못되면 어쩌나하고 못내 힘드셨지요.”


“네. 아들밖에 없는 집이라, 표현들은 서툴렀지만, 그래도 이젠 아버지 밖에 안 계신데... 아버지까지도 잘못 되신다면 저희 형제들 한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드님들께서 아버님이 걱정이 되어 센터를 찾아주신다 한들, 상담 받으실 분은 아버님이시라, 아버님의 의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상담에 있어서는 내담자의 적극적 활동이 더없이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아... 그 부분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모셔 올테니까 저희 아버님 꼭 좀 잘 부탁드립니다. 속으로 삭히시는 부분이 너무 많으셔서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드님과의 상담요청 후, 상담 예약과 취소가 되풀이 되고서야 뵐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들들이 상담을 받아보라고 간곡히 얘기를 해서 마지못해 오긴 했지만, 젊은 여자랑 무슨 얘기를 하라는 말인가요?” 라던 아버님과의 첫 상담 자리는 어색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겠다는 냉담한 표정의 아버님을 뵙자니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문제해결을 위해 스스로 상담실을 찾는 대부분의 경우 외에도,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요나 회유 등으로 상담실을 찾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러한 비자발적 내담자는 상담을 받는 상황 자체의 불편,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에, 무엇보다 상담을 통해, 애도의 슬픔이나 못다한 고인에 대한 감정들을 풀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버님, 제가 젊은 여성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하냐고 말씀하셨는데,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으실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시는 이유를 여쭈어 봐도 될까요?”


“... 자꾸 주변에서 아직 젊다고, 너 아직 젊으니 애인을 사겨라, 마누라를 바꿀 수 있어 좋겠다. 이런 말들을 해대니까, 나를 뭘로 보고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건지 화가 납니다. 그저 나를 속물로 보고, 저희들끼리 멋대로 말하고 말이지, 어쨌든간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질려버렸는데, 이렇게 생판 모르는 젊은 여자랑 그것도 마누라 얘기를 하는 것이 더없이 불편한 일이 아니겠소.”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첫 대면에서 보이셨던 강경한 태도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어색해 하시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어머님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으셨습니다.


집안의 소개로 만난 아내분은 고왔고, 지혜로웠다 말씀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은행권에서 근무를 하시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돌보지 못한 공백들은 아내분이 도맡아 하셨고, 삼형제들 역시도 무탈히 키워내셨다 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모습으로 퇴직을 하셨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 재미를 붙일 즈음, 갑작스럽게 떠난 아내의 부재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가 집안내력인지, 관절염이 꽤 젊은 시기부터 있긴 했지. 그런데 집안 식구들이 다들 그래서 깊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유난히 걷는걸 불편해 할 때, 힘드냐는 말보다 나랑 같이 살빼자라고 핀잔을 줬었는데... 이렇게 심근경색으로 허망하게 떠날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도 아내가 절뚝거리며 걷던 뒷모습이 생각나. 왜 그때 좀 알아주지 못했을까, 너무 짠하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서... 내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겠다던 아버님은 어느새 눈물을 보이셨고, 급기야 흐느끼셨습니다.


“내가 재수가 없어서, 내가 원래 재수가 더럽게 없다 보니까, 남들은 잘만 살아가는데, 마누라 앞세운거야. 나랑 같이 살고 있는 막내도 나랑만 둘이 살다보니까, 공무원 시험에도 미끄러지는거 아닌가 몰라. 내가 재수가 없어서...”


아내와 사별하고 함께 거주중인 막내아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준비가 미흡한 시간이었으나, 아버님은 ‘모두 당신 탓’이라고 자책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집도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당신의 ‘재수’ 탓으로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별 이후 찾아오는 슬픔의 반응은 개개인의 정서적, 행동적, 인지적, 신체적인 양상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특히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유가족의 애도과정은 더욱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더욱이 배우자의 사망은 생애 가장 큰 스트레스 사건입니다. 이러한 큰 슬픔에 남겨진 배우자들은 깊은 무력감과 무망감으로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시기를 놓친다거나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함으로써, 앞에 놓인 삶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통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를 너무나 갑작스럽게 잃은 아버님께서는 아내의 신체적 고통을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했다는 죄책감과 짙은 그리움을 한참동안 말씀하셨습니다. 주변에서 쉬이 건네던 위로의 탈을 쓴 독설에 아팠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슬픔을 토해주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뒤따르는 이별의 형태가 준비할 시간조차 없이 갑작스러웠다면, 남은 우리가 살아남아 견뎌야 하는 시간은 잔인하리만큼 아픕니다. 이미 이러한 고통 속에 계신 분들을 우리는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때, 격려하고 위로하려는 말들 중에는 때때로 상처를 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가슴을 쏘는 독한 말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깊은 우울에 빠져 계셨던 아버님은 어떠한 말도 나누고 싶지 않겠다던 처음의 의지와는 다르게 여러차례 아내에 대한 이야기와 당신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퇴직 이후의 수정된 계획과 포부를 밝히시며 스스로의 회복탄력성을 찾아나가셨습니다.


좋아하셨던 소나무 분재 사진을 보여주시며, 몇몇분께 ‘분재 키우기 강사’가 되었다며 웃음 보이셨던 아버님의 인생 후반부가 나무가 뿌리가 내려 무르익는 시간처럼 새로운 삶의 조각들을 맞추는 시간이 되시길 응원합니다.



글 / 류은지 그레이프 치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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